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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9)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묻고 다니는 것으로는 결코 평상심을 체득할 수 없다.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평상심은 도망간다. 도란 “시장하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데” 있다. 아담과 이브는 “긁어 부스럼”으로 그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에덴동산을 스스로 잃게 만들었다. 


평상심이 곧 도라는 깨달음은 불교를 위시하며 기독교가 인간의 현실적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 가르침은 과학과도 소통하고 심리학과도 소통한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불교나 기독교가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과학/행동심리학과 연관시켜 분석한다. 


제 3 장: 본심, 평상심의 회복


인간의 눈은 그가 살아오면서 겪게 된 온갖 잡다한 경험에 의하여 조건화 또는 학습되어 어떤 것도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길 앞에 가로 놓인 새끼줄을 보고 뱀을 보았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은 것이 사람의 눈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나 단어 하나하나에도 이미 미추나 귀천이라는 감정으로 오염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눈 그대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성경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말로 해석되어 버린다. 


인간의 눈이 그렇게 오염되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눈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또한 설교를 듣지 않을 수도 없다. 이와 같이, 비록 우리의 눈이나 마음이 신뢰하지 못할 형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눈이나 마음이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점차 배워가는 공부가 요구된다. 


누구에게나 스승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승은 예를 들어 화엄사법계에서 사와 이가 있고, 이사가 결합하여 마침내 사사무애법계로, 우주자연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머리, 인지적으로 알게 한 후, 최종적으로는 조사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제자들이 그 화엄의 세계에 속한 지체로 기능하도록 생각조차 제거 하도록 촉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지적 영역에서 행동적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이러한 점진적 그리고 위계적 방법은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심리, 교육, 사회 전반에서 적용되는 방법이다. 


특히 학습 및 행동심리학은 자연과학에 바탕을 두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행동이 환경변화에 따라 어떻게 학습되는지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여 그 원리를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위하여 적용하도록 한다(Skinner, 1953).


종교와 과학은 병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실은 인간이 우주에 속한 부분이면서도 인간이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생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 낸 망상이 인간이 본래 소유하게 되어 있는 지혜를 방해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주는 기독교나 불교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복을 얻으려는 기복 종교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기독교와 불교에서 과학을 본다. 그것이 곧 기독교에서 사람의 몸을 성전에 비유하거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비유하거나 또는 불교에서 인간의 본질을 무아나 공으로 보는데 있다. 


하나님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법과 이(理)로 보면 인간의 일거수일투족도 하나님의 뜻과 법에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며 인간의 생사화복 등 그 무엇 한 가지, 하나님 손, 그 법에 달려있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라고 보는 것도 과학자들이 인간을 우주의 부분으로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불교에서는 연기의 법칙, 연합의 법칙으로 인간이 우주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물의 한 자락에 속하는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는 것도 그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학자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오히려 무지에 속해 있다. 그들은 인간을 우주에 속해 있는 일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태도는 그들이 발견한 그 원리와는 무관한, 관망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는 그들의 발견, 발명이 그들의 무지와 욕심에 의하여 오히려 인간을 자멸의 길로 이끄는 위험요인이 된다. 만일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그 법칙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킨다면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쉽게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지적이나 인간의 본질이 공이라는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도인이 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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