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내 반에 있는 Y양이 결석을 하였다. 내 과목에서는 결석과 성적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강의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니 학생들은 그야말로 '부잣집 약국' 하는 심정으로 내 강의에 온다. 그러니 학생들이 결석하는 경우가 다른 강사에 비해서 많다. 머리가 다 큰 사람을 보고 학교에 "결석을 몇 번 이상하면 최종 점수에서 몇 점을 깎는다" 식의 대학에서 내리는 벌칙은 말로는 "너희들도 이제 다 컸으니 알아서 해라" 하고 행동으로는 초등학생 취급을 해서 말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대학 규정이 어떻든 말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한 지가 벌써 한 3년은 되었다.


 Y에게 먼저 시간에는 왜 못 왔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몇 살이냐고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물었더니 42년생이니 올해 62살이라 한다. 순간 나는 어느 흉한에게 뒤통수를 솜방망이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보다 두 살이 적은데도 할아버지다. 아무리 젊어 보이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네 해도 다 새빨간 거짓말, 나도 할아버지인 것이다. 적어도 Y양 세대에는 나는 할아버지이지 아저씨는 아니다.


 세상에 늙어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옛날 시조를 보면 늙음을 탄식하는 노래들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탄로가(嘆老歌: 늙음을 탄식함)를 남긴 역동(易東) 우탁이 지은 노래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늙지 않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으나 별 효과가 없다는, 세월의 무게는 당할 재간은 없더라는 노래이다. 작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노래로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

 

 

늙기 서러운 것이 백발만 여겼더니
귀먹고 이 빠지니 백발은 여사로다
그밖에 반야가인도 쓴 외 보듯 하여라

 

 

 반야가인(半夜佳人)이란 천하미인이란 말이다. 이 천하미인과 하룻밤 정을 맺으려 해도 쓴 참외를 보듯 얼굴을 돌리게 되니 이러고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다.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로 시작되는 [권유가(勸游歌)]는 청춘 시절에는 멋모르고 흥겹게 부른 노래였으나 "이제 나도 종착역 가까이 왔구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엘레지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인가, "인생은 60부터" "고목에 꽃이 핀다" "70대 성(性)의 즐거움" 등 갖가지 달콤한 구호들이 많다. 다 거짓말.


 내가 즐겨 흥얼거리는 시조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 "청춘 소년들아 백발 노옹 웃지 마라. 공번된 하늘 아래 넨들 얼마 젊었으랴. 우리도 소년 행락이 어제련 듯 하여라" "젊은 소년들아 머리가 하얗게 된 늙은이를 비웃지 말아라. 하늘은 지극히 공평한데 젊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젊을 줄 아느냐. 얼마 안 있으면 너 같은 젊은이도 나 같은 늙은이와 같게 되고 말 것이다"라는 요지의 빙긋이 웃어 넘기는, 겉은 웃음이나 속은 원한과 눈물로 가득한 그런 노래이다.


 1970년대 한국 대중 가요계를 휩쓸었던 가객 나훈아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청춘을 돌려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가객 나훈아가 이 노래를 부를 때는 그가 20, 30대였다. 피 끓는 청춘시절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야. "를 외쳤으니 아무리 가수라 해도 50, 60은 되어서 이 노래를 불렀으면 호소력이 더 컸지 않겠는가? 아마 이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에 공감하지 않는 늙은이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지 싶다.


 어릴 때 '젊어서 좋다'는 찬사를 하루에 수십 번 들었다. 그때마다 '누굴 놀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냉담하여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니 들어도 못 들은 것이다. 나도 빨리 자라서 이 청춘을 벗어던져 버리는 게 소원이었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 말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는 늙음이란 괴물이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젊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면 더욱 부럽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 하는 막연한 부러운 생각이 든다. 슬픈 사실은 내게 저런 시절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있는 학교 골목 안에 있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이 골목은 메운다. 이들을 아침저녁 대하는 즐거움도 보통 즐거움이 아니다. 마치 3, 4월에 돋아나는 찔레순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이들도 몇십 년이 지나면 나처럼 늙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청춘이 어딜 갔나,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사람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릴 것이다. 자기 할아버지가 62살이라는 학생은 64살 먹은 나를 어떻게 볼까, 물어보기도 겁이 난다.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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