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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이다. 토론토에서 캐나다한국문인협회 모임에 갔다가 새벽녘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는 거의 저녁 무렵에 일어나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얼른 구별도 안 가는 어리벙벙한 중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뜻밖에 L 교수였다. L 교수는 나와 대학교 동기 동창으로 E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맡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한국청소년 상담원 원장으로 촉탁발령이 났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 가면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또 요청 하지 않아도 특강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몇 마디의 헛소리를 해주고 점심을 얻어먹고 올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다. 10년 전에는 L교수가 그의 부군과 함께 캐나다에 여행을 왔을 때 우리 집에 들러 이틀을 놀다 갔다. 有朋自遠方來不樂乎(벗이 멀리서 스스로 찾아오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의 옛말은 제쳐두고라도 내 아내의 중, 고등, 대학교까지 선배가 되니 처가 세력을 의식해서라도 도저히 괄시 못하는 처지다.


 지금부터 40년 전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L양이 내 레이더망에 걸려든 적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출신은 성골(聖骨) 진골(眞骨)이 못 되는 안동 두메산골에서 올라온 토종 꺼벙머리 평민, 말도 한 번 사나이답게 걸어보질 못하고 4년을 보낸 한(恨)을 간직하고 있다.


 L 교수가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한국 청소년 상담원' 현판을 내가 붓글씨로 하나 써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쾌히 응낙하고 수화기를 놓았지만 한동안 회억의 실타래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963년이었던가, 나는 서울대학병원 구내, 당시 함춘원(含春苑) 뒤에 있던 서울대학교 학생지도 연구소에서 인턴을 마치고 거기서 연구조교(그때는 유급조교라 불렀다)로 있다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가난한 시절이었으니 우리 집은 물론 나라에서도 돈이 없어서 캐나다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여비는 한미재단의 도움을 얻어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였는지 분명치 않으나 직원 R씨의 부탁으로 '서울대학교 학생지도 연구소' 간판을 내가 훈민정음체로 써서 동판(銅版)으로 만들어 벽에 걸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로부터 35년의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한국 청소년 상담원'을 써달라는 부탁이 전파를 타고 건너왔으니 이 어찌 보통 인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붓글씨를 배우다가 고등학교 때는 대구에 가서 석대(石帶) 송석희 선생께,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일중(日中) 김충현, 여초(如初) 김응현 선생께 배웠다. 국전(國展)을 준비할 때는 여름부터 그까짓 학교공부는 접어두고 파고다 공원 앞에 있는 동방연서회 서실에 가서 밥 해먹고 잠자며 글씨를 썼다. 그때 나와 같이 붓을 잡았던 서우(書友)들로는 간산(艮山) 황제국 교수, 백석(白石) 김진화, 석창(石蒼) 홍숙호, 신계(新溪) 김준섭, 일파(一波) 정상옥, 초정(艸丁) 권창륜 등 수없이 많다. 지금은 모두 한국 서예계를 주름잡는 대가들이다.


 지금 나의 아내가 된 미석(美石) 정옥자는 대학 같은 과 후배도 되려니와 동방연서회에서 붓대를 잡던 글 벗이었다. 운명의 장난으로 구름 밖으로 떠돈 지가 어언 30년이 넘었으나 오늘까지 마음 가라앉히고 붓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질 못했다. 벌써 山影人門堆不出(산 그림자가 문턱을 넘어 섰는데 밀어도 나가질 않네)의 이순(耳順)이 내일 모레다. 무정타 세월이요-.


 무용이나 노래를 하는 예술인은 내 심정을 잘 알 것이다. 어떤 때는 신명이 나고 힘이 솟구칠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런데 이 ‘한국 청소년 상담원’을 붓글씨로 써달라는 부탁이야말로 너무도 신이 나고 더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일이다. L교수가 바로 옆에 있다면(설사 그 부군 되는 분이 옆에서 째려본다 하더라도!) 부탁해줘서 고맙다는 큰절이라도 넙죽 올리고 싶도록 기분이 좋은 것이다.


 요즘같이 우울한 세상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만족한다” “나는 행복하다”를 외치는 것도 신종(新種) 정신병으로 볼 수 있다. 정신병 증세가 아닌 엄연한 현실감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왜 이 불초소생(不肖小生)이 뛸 듯이 기분이 좋은지 이유를 몇 자 적는 수밖에 없다.


 첫째, 나는 가끔 내 자신을 예술가로 자처하기를 좋아한다. 이 하늘 아래 예술가로서 자기 작품이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시조를 읊은 봉래(逢萊) 양사언도 금강산 만폭동(萬瀑洞)에 “逢萊風嶽元化洞天“이란 글씨를 바위에 새겨놨다지 않는가.


 둘째, 나는 학문적으로 1963년부터 오늘까지 상담심리에 몸담고 있다. 늘 푼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아냥도 할 수 있겠지만 상담실리야말로 나의 분신이요 학문적 조강지처라 할 수 있다. 상담이란 두 글자는 낯선 곳의 어느 기차정거장에서 고향 마을 이름이 엿들릴 때처럼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다. 이같이 내 인생을 바친 상담심리학을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의 수련도장이자 상담학의 본산인 ‘청소년 상담원’의 간판을 써달라는데 어찌 신명이 나질 않겠는가.


 나는 이번 ‘한국 청소년 상담원’ 간판이야말로 건물을 부수는 쇠망치에 얻어맞고 엿장수에 팔려가는 비극적인 종말이 되질 않기를 빈다. 물론 내 글씨뿐만 아니라 한국의 상담학이 대 비약을 해서 학문적인 탈바꿈이랄까 거듭 태어남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Tomas Kuhn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학문의 혁명, 패러다임의 변혁을 가져오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국 청소년 상담원’이 되기를 빈다. (19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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