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이면 가끔 자녀들 얘기로 꽃을 피운다. 뉘 집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는 얘기부터 뉘 집 아이는 부모가 공부하라는 성화 한번 안 했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그 어려운 과를 쉽게 들어갔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은 얘기도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빌빌 기고 있다는 이야기며, 중, 고등학교까지는 모범생이던 아이가 대학에 오더니 게을러지고 행실도 나빠졌으니 애들은 커봐야 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아이들 얘기 끝에는 으레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원인규명이 시작되고 그 원인 규명이 시작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부모가 어떻다는 등 부모에 대한 평가도 아울러 따른다. 그러니 아이 얘기로 시작되어 부모에 대한 평으로 끝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한 행동에는 으레 그 부모의 피나는 보살핌이 칭찬을 받고, 아이들의 잘못한 행동에는 부모의 무성의 내지 무지가 그 원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부모가 이런 이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아이에게 저런 저런 일이 터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 교육에 대단한 성의와 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부모 속을 썩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 부모가 잘못을 저질러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외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들의 영향 때문인 경우일 때가 더 많다. 인간 행동에서 직접적, 단수적 인과관계는 극히 드물다.


 아이들은 부모 영향도 받지마는 또래 영향도 받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 영향도 받고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 또는 운동선수 영향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모의 영향이 차츰차츰 줄어 들면서 학교 안팎에서 만나는 친구들 영향이 늘고 영화나 소설, 신문이나 잡지 영향도 받는다. 아동에게 영향을 주는 이 무수한 요소 중에 우리 눈에 가장 쉽게 띄고 알기 쉬운 것이 부모의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걸핏하면 부모 행동을 아이 행동 원인의 전부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신문 배달을 한 두 소년 A와 B를 생각해보자. A는 순조롭게 고등학교를 마친 후 우리가 말하는 '모범 청년'이 되고 B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건달'이 되었다 하자. 그러면 우리는 A는 그 부모가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을 시켜서 일찍부터 세상 물정을 알게 하여 오늘날의 성숙한 청년이 되었다 할 것이고, B는 그 부모가 어린놈을 신문 배달을 시켜서 너무 일찍부터 돈 맛을 알게 한 까닭에 오늘날 그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꼭같이 신문 배달을 했는데 왜 한 아이는 모범 청년이 되고 또 한 아이는 건달로 됐는지 그 이유는 너무 복잡해서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신문 배달이 과연 아이 행동의 원인이 되었는지는 규명하기가 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설사 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 원인인지 아니면 간접적 원인이 되었는지를 밝혀내기는 더욱 더 힘들 것이다. 


 또, 신문 배달과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시간상의 흐름으로 보면 신문 배달과 공부를 게을리한 것을 시간상의 흐름으로 보면 신문 배달이 공부를 게을리한 것보다 먼저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즉, 공부에 흥미를 잃어서 그 결과로 신문배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면 공부를 게을리한 것이 신문 배달의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신문 배달과 공부의 태만이 서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고 다만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어난 현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려 할 때, 다시 말하면 "왜 그런 결과가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할 때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구별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가 남에게 일어난 것인가에 따라서도 그 원인의 소재를 다르게 생각한다. 나쁜 결과가 일어난 데 대한 원인을 규명할 때는 자기 자신에 일어난 결과는 외부적, 환경적인 요소로 돌리고, 남에게 일어난 나쁜 사건은 그 사람 특성, 예를 들면 "욕심이 지나쳐서" "성격이 칠칠맞지 못해서"와 같이 그 사람이 갖는 특성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예를 보면 어떤 결과를 보고 왜 그것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뿐더러, 흔히 얼토당토 않는,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의 잘못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길을 걷는 자식들 때문에 평생 징역을 언도받은 죄수처럼 활기를 잃어간다. 변호사도 없이 집행된 이 재판에서 언도를 내린 재판장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부모들인 것이다. (200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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