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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설마’의 역사 500년(17)-한일합병(하)
samkang39

 

(지난 호에 이어)
합병 이후, 조선 백성들은 일본천황을 군주로 모셔야 하는 의붓자식이 되었고, 일본 국민들의 종살이를 하여야 했다. 그러나 왜 나라가 없어졌는지, 어떻게 해서 의붓백성이 되었는지, 그 억울함을 소리치며 할복자살을 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시시해도 내 나라가 있을 때에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소리칠 곳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도 아니었다. 말 못하는 벙어리의 냉 가슴속에서 그저 울분만 쌓이고 쌓여갔다. 나라를 빼앗긴지 9년, 1919년 3월 1일 정오, 우리 민족의 울분은 드디어 폭발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아무도 이 8월 29일, 국치일(國恥日)을 기억하려 들지 아니한다. 매년 8월이 되면 아프고 부끄럽고 쓰라린 이 비극의 날을 기억하지 아니 하고, 8.15경축 행사만 벌인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역사를 배워도 아픔의 뉘우침을 모르고, 반성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해방이 된 기쁨을 축하하는 일에만 취해서 정작 아픔을 되새겨야 하는 비극의 역사는 뒤안길에 묻혀버렸다.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도 목적도 잊어버린 민족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1910년 8월 29일을 잊어 버린다면, 설마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한일 병탄 조약시 전권위임장에 관례와는 다르게 순종의 이름(?)이 서명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명은 순종의 친필이 아니다.


창덕궁 대조전에 있는 흥복헌. 1910년 8월 22일, 이곳에서 한일 병합 조약을 찬성하는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일본 제국은 병탄의 방침을 1909년 7월 6일 내각회의에서 이미 확정해 놓고 있던 상태였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제적 명분을 얻는 일만 남겨두었다. 


 왜 경술국치를 망각하는가? 8월 29일을 ‘역사 반성의 날’로 정하자. “과거에 눈을 감으면,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중 하나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었고, 수치스러운 역사도 있었다.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강조하는 것이 역사공부인가?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억함은 더 중요한 일이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300여 척의 왜군과 싸워 이긴 이순신의 활약상, 북한의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밀렸던 상황에서 단숨에 전세를 뒤집어 놓은 인천상륙작전, 모두 자랑스러운 역사로 널리 알리고 강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20여 일만에 한양이 점령당하였다는 사실, 임금인 선조와 관리들은 살길을 찾아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 등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민군이 남침을 개시한 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고,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관리들은 국민들에게 남으라 하고 자신들만 도망친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국가를 유지 관리해야 할 책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에 대해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1910년, 경술년 8월29일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날이다. 대한제국은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해서 이를 ‘경술국치’라고 한다. 대한제국은 조선에서 비롯되어 519년이 된 나라였다. 500여 년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망하였지만, 망한 원인을 찾거나 반성하는 일에는 눈을 감고 있다. 아니 회피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공부를 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일제의 침략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국가의 운영을 책임진 군주와 대신들에게도 그 원인이 있고 큰 책임이 있다.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의 제5조는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는 내용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갖고 온 것은 4개조뿐이었다. 제5조는 대한제국 쪽에서 요구하여 들어간 내용이다. 국가의 주권을 빼앗겨도 황실만 안녕하고 존엄을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백성은 버려도 된다는 것인가?


‘병합조약’도 다르지 않다. 8개조 중 제1조와 2조는 한국에 관한 통치권을 양여한다는 것과 양여를 수락한다는 내용이고, 제8조는 공포일로부터 시행된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5개 조항은 무엇 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황제•태황제•황태자를 비롯한 황실, 그리고 전•현직 대신들은 그 직위에 맞는 대우와 세비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이 약속을 지켰다. 이들에게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지급하였다. 황실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신분보장과 대가를 받고, 500년이 넘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 넘긴 것이다. 


 해방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매년 8월29일이 되면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기념식을 열었다. 국가의 치욕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현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에서 제정하고 기념한 ‘3•1절’ ‘개천절’ ‘순국선열기념일’ 등은 모두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국치일은 기념하지 않고 있다. 잘못 됐다. 언제부터인가 역사에서 책임과 반성이 사라졌다. 500년 넘는 나라가 망했지만, 책임진 사람이 없다. 그 원인도 모른다.


 부끄러운 역사라고 해서 눈을 감고 있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더 이상 눈을 감지 말자. 과거에 눈을 감으면, 미래를 볼 수 없다. 그래서8.29 국치일을 “역사 반성의 날”로 정해야 한다. 

 


 
<대한제국의 국권피탈 과정>


 1904년 2월 한일 의정서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
 1905년 11월 제2차 한일 협약
 1907년 7월 한일 신협약
 1909년 7월 기유각서
 1910년 6월 경찰권 박탈
 1910년 8월 한일 병합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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