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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 눈이 자주 내려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이 겨울에 지쳐가던 어느날 밤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며 늘 하던 버릇대로 무심코 창을 열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갑자기 한 여인의 얼굴이 창너머에서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주 낯익은 얼굴의 그 여인을 나는 금방 알아보지 못 했지만 분명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구더라…??? 한 동안 그 얼굴을 살피며 골똘히 생각하던 내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젊은 시절 나는 등대가 바라보이는 해변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도서관 구석에서, 어두침침한 지하다방에서, 쉰 막걸리냄새가 풀풀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로 어느 찻집에서, 늦은 밤 퀴퀴한 하숙방에서 그녀를 만나곤 했다. 무시로 그렇게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터같은 가슴에 대책없이 알코올을 쏟아 붓곤 했다.


그리곤 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찌꺼기들을 토해 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슬며시 나를 떠나고 말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던 그녀가 이 을씨년스런 겨울밤에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생일이 이 맘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아이가 셋 딸린 마망인과 재혼하여 자녀를 넷 두었는데 그녀는 그 중 셋째였다. 겨우 여섯살이 되었을 때부터 의붓오빠로부터 성추행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열세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다시 의붓오빠의 성적학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평생 성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서른 살에 그녀의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해할 만큼 헌신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조건의 하나가 ‘평생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니 어린 시절 성적 학대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정신질환증세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쉰 아홉 되던 해에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녀가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사라졌다가 그 날 저녁 그렇게 불쑥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낸 후 줄곧 그 깊고 슬픈 눈망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등대를 찾아 가려던 참이었다. 


토할 뻔 했다. 먹은 음식이 입으로 도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느낀 건 수십년전 세상모르고 철없던 시절 어줍잖게 시대의 울분을 토하면서 폭음을 했을 때 이 후 처음인 것 같다.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서 한국식품점에서 집어온 한국신문을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 했다고 생각한다. 뉘우친다.”


‘괴물’ 시인은 그렇게 읊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심한 욕지기를 느껴 숫가락을 내려 놓고 말았다. 그의 고약한 손버릇과 행적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인터넷을 도배질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속으로 제발 그의 입에서 닳아빠진 정치인을 닮은 변명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젊은 여인만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고 했더라면 그렇게 역겹지는 않았을 테다.


시인의 언어는 늘 경이로운 충격으로 다가 오곤 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김영랑) 그렇게 봄은 우리곁으로 다가왔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은 그렇게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유치환) “내 고장 칠월은 청포고가 익어가는 시절/ 이 고장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육사)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서정주), “시몬! 나뭇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은가 낙엽 밟는 발자욱 소리가…”(구르몽) 가을은 또 그렇게 깊어가곤 했다.

 

“어느 머언 곳의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 /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 추운 겨울은 그렇게 따뜻해졌다. 


시인의 입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우리의 영혼을 울리고 감성을 일깨우는 경이로운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인들의 영혼은 모두 그렇게 맑고 순수한 줄만 알았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거룩하고 고결해 보이던 시어들이 결국 한갓 얄팍한 말장난에 불과했단 말인가? “…없었지만,…된다면…고 생각한다.” 시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내 속에 쌓여 있던 모든 시어들을 게워내게 했다. 못 볼걸 보고야 말았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 그 X덩어리” 


시인은 그렇게 시를 날려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시를 마음으로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말장난이 재미있어서 볼지는 몰라도.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박인환)


암울한 시절을 살아야 했던 시인은 이렇게 그녀의 생애를 기억하고 아파했건만, 이 시대의 글쟁이들은 그녀를 기억하기나 하는 건지… 어쩌자고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는지…


그녀의 슬픈 눈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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