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恨)의 정서’이다. 근대화 이전 왕조시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서민들은 다 핍박 받으며 고달프게 살았지만, 한국인들 머리 속에는 “부모를 잘 못 타고나서 그렇지 내가 너보다 못 할 게 없는데…”하는 생각이 유난히 강하다 보니, 똑같이 핍박 받고 수난을 당하더라도 속으로 느끼는 억울한 생각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같아야 할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게 보이니 늘 현실이 불만스럽고, 삶 자체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 억울한 마음이 속으로 쌓이고 쌓여 응어리진 것이 바로 ‘한국인의 한’이다.


평등의식이 강하다 보니 “네가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하는 마음에서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행이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서도 남들보다 처지는 걸 참을 수 없어 너도나도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리니 성형천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질적으로 남이 나보다 잘 났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으니 사촌이 나는 못 사는 논을 사면 배알이 꼬이고 속이 불편하다. 


평균적으로 아무리 잘 살아도 ‘나보다 잘 난 게 없는 남’이 나보다 더 누리고 사는 걸 참을 수가 없으니 늘 불만족스럽고, 온 나라가 지옥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평등해야 할 삶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이를 극복할 길도 보이지 않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어쩌다 기차나 버스가 지나가면 동네아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길가에 나와서 승객들을 향해서 쑥떡을 먹이곤 했다. 자유당시절 미국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시골길을 지날 때 예외 없이 쑥떡을 먹였는데, 이 걸 보고 미 대통령이 “저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통역관이 민망하여 아이들이 환영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커지고 말았다.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 대통령이 한국식 인사를 한답시고 이 대통령에게 쑥떡을 먹여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아이들은 왜 그렇게 외지인이 지나가기만 하면 쑥떡을 먹였을까? 시골아이들이 보기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뭔지 모르게 자기들보다는 좀 잘나 보이니까 ‘니들이 뭐가 그리 잘 났냐?’하는 심리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즉, 무의식 중에 핏속에 흐르는 평등의식이 발동해서 나타난 본능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항간에 유행하는 유머에 ‘x도 모르는 게 면장’ 시리즈가 있다. 유머도 시대를 따라 변해간다. 70년대 ‘최불암 시리즈’에서부터 맹구, 아줌마… 등을 거쳐서 최근에는 ‘아재개그’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면장’시리즈는 수십 년이 지나도 약간씩 버전을 달리 해가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나 몇 번씩은 들어서 아는 내용인데, 어느 시골면장이 길을 가다가 꼬마아이의 고추를 가리키며 짓궂게 “이 게 뭐야?” 했더니 나중에 그 아이가 뒤돌아 가면서 “x도 모르는 게 면장이라고…” 했다는 게 원전(?)이다. 이 유머가 최근에는 “개x도 모르는 것들이 정치를 한다고…”라는 버전으로 변해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길…) 


이런 류의 유머가 대중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도 높은 자리에 앉아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을 ‘뭣도 모르는 자들’ 즉, 나보다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자들로 치부하려는 내면심리와 잘 맞아 떨어져 본능적으로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우리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태생적으로 이런 평등의식이 깊이 박혀 있다. 이런 유별난 평등의식은 우리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의식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므로, 이런 우리의 특성이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발현되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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