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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유명 음악가 시리즈(II)-‘바람의 신부’(Bride of the Wind) (5)
youngho2017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아내 
알마의 생애를 그린 작품
 

 

 

 알마에 관한 영화 밖 이야기: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1920년에 정식 이혼했으나 베르펠과는 10년의 구애 끝에 1929년 비로소 결혼했다. 이름은 알마 쉰들러-말러-그로피우스-베르펠로 길어졌지만 이것이 끝이었다. 세상은 바뀌어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라 더 이상 다른 인생의 반려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고, 나이는 어느새 50줄로 들어서니 자칫하다가는 홀로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급기야 베르펠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알마가 어쩌면 키도 작고, 외모도 볼품이 없었던 '어른 아이' 같은 유태인 베르펠에 대한 콤플렉스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 이를테면 정치적 성향의 차이, 반유태주의자인 알마의 베르펠의 유태교 개종 요구 등 ― 무엇보다 베르펠은 이미 명성을 날렸던 전 두 남편과는 달리 경력이 미진하였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재능을 믿고 성공하기를 기다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베르펠은 시나 단편보다는 소설로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는 알마의 충고 대로 성공을 거둔다.


 1937년 6월12일, 알마는 자기 집에 비엔나의 유명인사들을 모두 초청하여 시끌벅적한 밴드연주 속에서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듯한 마지막 송별파티를 연다. 나치 정권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날 파티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후 2시까지 이어졌는데 프란츠 베르펠은 술에 취해 정원 연못 속에 빠졌고, 극작가 카를 추크마이어는 개집에서 잠을 잘 정도였다.


 다음해인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알마와 베르펠은 프라하, 부다페스트,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로 피신하였다. 


 1940년 6월 베르펠과 알마가 미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르세유 여행허가서를 받기 위해 5주 동안 루르드 지방에 머물렀을 때, 성 베르나데트 수비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 성공적으로 가게 되면 꼭 이를 소설로 쓰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한다.

 

 

 


 마르세유에서 두 사람은 미국 언론인인 버라이언 프라이(Varian Fry, 1907~1967)를 만나 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마드리드로 갔다가 거기서 비행기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건너가 네아 헬라스 선편으로 미국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註: '미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버라이언이 프랑스에서 유명화가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등 2천 명 이상의 유태인 예술인•지식인들을 구출한 얘기는 2001년 윌리엄 허트 주연의 TV영화 '더러운 전쟁(Varian's War)'으로 제작되었다.] 


 아무튼 두 사람은 1940년 10월13일 뉴욕에 도착하였고 나중에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였다. 거기엔 이를테면 토마스 만, 막스 라인하르트,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많은 독일 및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알마의 절친한 술친구였던 유명한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도 있었다.

 

 

 


 프란츠 베르펠은 드디어 1941년 그의 소설 '베르나데트의 노래(The Song of Bernadette)'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사들여 1943년 헨리 킹 감독, 제니퍼 존스(Jennifer Jones, 1919~2009)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알마가 원한 대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 1844~1879)는 실존인물로,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루르드(Lourdes) 지방의 가난에 찌든 소작농의 딸로 당시 천식을 앓고 있는 14세의 소녀였다. 땔감을 구하러 멀리 떨어진 마사비엘 동굴에 갔다가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을 본 이후 치유의 샘물을 파, 이를 마신 사람들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사후 가톨릭 교황청으로부터 성녀로 시성된 인물이다.


 이 소설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베르펠은 베르나데트의 캐릭터와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등의 구성요소들을 의붓딸이었던 마농 그로피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밖에 그가 쓴 많은 소설에도 마농을 모델로 쓴 것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베르펠은 많은 유산을 남기고 1945년 8월26일에 치명적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5세였다. 그의 유해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알마가 칠순 생일을 맞이했을 때 뜻하지 않은 77명의 명사들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를 선물로 받게 된다. 거기엔 전 남편 발터 그로피우스, 오스카르 코코슈카, 토마스 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유진 오르먼디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지적 소유권 문제로 말다툼을 벌여 소원해진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초청받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코코슈카가 "나의 '바람의 신부'에서는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다."며 70살의 알마에 대해 그의 불멸의 사랑을 고백한 점이다. 

 

 

 


 알마는 1951년 거처를 뉴욕으로 옮겨 3층짜리 아파트에서 기거하며 1953년 그녀의 일기에 바탕한 '다리 놓는 사랑(And the Bridge is Love)'이라는 자서전과 자신이 작곡한 16가곡집을 출판했다. 

 

 

 


 비엔나 예술가들의 절대적인 뮤즈였으며 예술계의 최고의 명성과 재능을 가진 남자만을 골라서 모두 정복한 팜므 파탈(femme fatale), 알마는 유명 남편들이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위대한 미망인'이 되어 가장 좋아하는 값비싼 '베네딕틴' 코냑으로 고독을 달래며 사교계의 여신처럼 살다가 뉴욕에서 1964년 12월11일 향년 85세로 타계했다. 


 장례식은 이틀 뒤에 거행되었으나 알마의 시신은 다음해 2월8일에 비엔나로 운구되어 전 남편 구스타프 말러와 5살 때 디프테리아로 죽은 맏딸 마리아 그리고 19세 때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난 마농 그로피우스가 묻혀있는 그린칭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눈부신 위성들이 궤도를 그리는 태양계 중력의 중심'이었던 알마 ― 진정한 팜므 파탈은 주위를 맴도는 숱한 남자들의 재능과 부와 명성을 갈구하며 열정과 영감과 고통을 주었을 뿐, 모든 남자들은 결국 그녀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 어쩌면 알마는 자서전 제목처럼 사랑이란 결국 다리를 놓는 관계이지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독일•프랑스 저술가이며 저널리스트인 클레어 골(Claire Goll, 1890~1977)이 알마를 '허접한 게르마니아인'이라며 악평을 했던 점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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