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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My Name Is Ba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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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게오르크 헨델(1685~1759)과 함께 이른바 '바로크 삼총사'로 일컬어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 J.S. 바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 편 있지만 여기서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 여감독 도미니크 드 리바츠(Dominique de Rivaz, 66)의 "내 이름은 바흐(Mein Name ist Bach)"를 소개할까 한다.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제작된 수작이다. 2003년 스위스•독일•프랑스 합작 영화. 출연 바딤 글로브나, 위르겐 포겔, 카롤리네 헤르푸르트, 아나톨 토브만, 파울 헤르비크, 안체 베스테르만 등. 러닝타임 97분.

 

 

 


 배경은 1747년 5월 라이프치히. 어느 안과 병원에서 이대로 두면 몇 달 후에 시력을 상실할 수 있다며 백내장 수술을 권고 받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바딤 글로브나). 그는 새 안경을 썼지만 초점이 잘 잡히지 않고 뿌옇게 보이는 눈 때문에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에서 절규한다. [註: 바흐는 1749년 5월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시력이 더 크게 나빠져, 1750년 3월 존 테일러(John Taylor, 1703~1772)라는 영국인 돌팔이 안과 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무균, 소독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바흐는 왼 눈 수술 1주 후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백내장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유였다. 낙후된 수술방법과 합병증으로 2차 수술 후 바흐는 안타깝게도 완전히 실명했고 심각한 눈 통증과 고열에 시달리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4개월 후인 7월28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이 존 테일러라는 작자는 1758년 8월 엉터리 수술로 게오르크 헨델도 실명시킨 아주 몹쓸 인간이었다.]

 

 

 


 그리고 타이틀이 뜨고 오픈 크레디트에 두 장면이 겹친다. 하나는 'FR'이라고 쓰인 부항단지를 사용하여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국왕(위르겐 포겔)이 포츠담 궁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FR은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the Great, 1712~1786)을 일컫는 'Friedrich Regium'의 약자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장면은 휘장을 친 마사지 팔러 옆에 거대한 개 조각상이 있고 그 주변에 개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광경이다. [註: 프리드리히 대왕은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극도의 불신 때문에 폐쇄적이었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애견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개의 충성심을 극찬했다.]


 다른 하나는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J.S. 바흐와 그의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아나톨 토브만)의 모습이다. 


 프로이센 령의 세관원(데틀레브 벅)이 바흐 일행이 탄 마차를 정지시키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 문답을 통해 우리는 여행의 목적과 가족관계를 알게 된다. 일행은 바흐의 차남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의 첫아들의 세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라이프치히에서 포츠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에마누엘은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하프시코드 주자로 있다가 그가 프리드리히 2세 국왕으로 등극하자 궁정작곡가가 되었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Wilhelm Friedemann Bach, 1710~1784)는 당시 할레(Halle)의 리브프라우엔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재직 중이었다. 


 세관원이 아기의 이름을 묻지만 바흐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서 이름이 없다고 하자 프리데만이 즉석에서 '아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작 에마누엘과 그의 부인 요한나 마리아의 의사에 관계없이 아담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이때 흥미롭다는 듯 마차에 실려있는 바흐의 하프시코드(쳄발로)에 손을 댔다가 바흐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고 혼줄이 나는 세관원.


 한편 에마누엘 바흐(파울 헤르비크)가 마사지를 받고있는 프리드리히 국왕에게 그가 작곡한 새로운 곡 '트리오 다듀(Trio d'Adieu)' 악보를 갖고 온다. 새로 짓고 있는 상수시 궁(Sanssouci Palace)으로의 이전을 축하하고, 현재의 포츠담 궁에 이별을 고하기 위해 작곡했다고 동기를 밝히는데, 왕은 돈은 받았냐고 물으며 자기는 작곡하라고 명한 적이 없다고 차갑게 반응한다.


 그러나 에마누엘은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는데 세례식 등 가계 부담이 크다며 연봉 인상을 요구하지만, 왕은 현 연봉 300탈러(약 2천만원)는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인상은 안 된다고 못박는다. 사실 왕은 이때 다섯 음으로 된 멜로디를 읊조리며 에마누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눈치 없이 때를 잘못 택한 것 같다.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서 있는 그를 보고 왕은 J.S. 바흐가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라며 오늘 저녁에 궁정악사 없이 연주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갖고 온 악보는 비서관 골츠(길레스 츄디)에게 건네라고 하지만 골츠는 슬쩍 구석에 내버린다. 그리고 왕은 재미있다는 듯 또 그 멜로디를 읊조리는데…. 

 

 

 

 


 장면은 바뀌어 아말리에 공주(카롤리네 헤르푸르트)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있는데, 음악지도교수 크반츠(필리프 뷔유미에)의 플루트 연주가 곁들여지지만 템포가 맞지 않다. 그녀는 이런 따위의 음악을 지겨워 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註: 요한 요아힘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는 플루트 제작자 및 연주가 겸 작곡가였다. 1728년 작센 선거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를 따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당시 왕세자였던 프리드리히 2세를 만나 그의 플루트 선생이 되어 드레스덴에서 베를린을 오가며 가르쳤다. 1740년 프리드리히 2세가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등극하자 그의 궁에서 평생을 머물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플루트 디자인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으며 18세기의 플루트 기교와 연주법에 관한 논문 '플루트 연주의 예술(On Playing the Flute•1752)'은 연주법 습득을 위한 입문서인 동시에 응용미학 개론서로 매우 가치있는 사료로 남아있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가 들어오면서 아말리에 공주에게 연주를 멈추도록 명령하지만, 계속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왕이랍시고 음악은 그만 두고 이제 춤을 추라고 명령한다."며 큰소리로 대들자 그가 악기의 뚜껑을 확 닫아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손가락을 다친다. 


 안나 아말리에 공주(Princess Anna Amalie, 1723~1787)는 프리드리히 2세의 막내 여동생으로 자유분방한 막내기질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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