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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서부 영화 시리즈(II)'셰인' (Shane) (5)
youngho2017

 
거칠고 삭막한 카우보이 세계를 
인간적•낭만적으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셰인과의 마지막 대화 중간에 조이가 "피가 나요. 상처가 났어요."라고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그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말안장에 앉은 그의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어지고 왼팔이 축 처진 채 묘지 언덕을 지나 테튼 산이 보이는 황야를 향해서 사라진다. 

 

 

 

 


 영화의 첫 오프닝에서 셰인이 계곡을 내려가던 길과 똑같은 길을 따라, 주제가처럼 '황야(자연)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방랑의 길, 자유로운 영혼의 길로 떠나는 것이다. 과연 그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셰인을 연기한 배우 앨런 래드(Alan Ladd, 1913~1964)는 총을 총집에서 빨리 뽑는 솜씨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솜씨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빨랐는데 무려 0.3초만에 총을 뽑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의 밝은 금발과 작은 키(165㎝) 때문에 배우로 입문하는 데 애를 먹었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1941)'에 기자 같은 단역 등을 거치면서 194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1949)' 외에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를 구한 작품이 바로 '셰인'이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인기를 만회하지 못했다. 낙담한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1964년 1월29일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51세. 약물과다 복용이 사인(死因)이었다. 


 참고로 1977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을 제작, 대성공을 거둬 20세기 폭스사에 대박을 안겨준 이가 앨런 래드의 첫 부인 마죠리 제인 사이에서 난 외아들 앨런 래드 쥬니어(82)이다. 그는 이어서 시고니 위버 주연의 '에일리언(Alien•1979)'을 만든 후 자신의 제작사인 The Ladd Company를 설립하여 4개 부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1981)', 해리슨 포드 주연의 '블레이드 러너(1982)', 코미디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1984)' 등을 제작, 대성공을 이어간다. 


 1985년 그는 MGM-파테 커뮤니케이션사 회장 겸 사장으로 발탁되어 셰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문스트럭(1987)', 수전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델마와 루이스(1991)' 등을 제작하여 '마이다스의 손'으로 군림했다. 


이어서 멜 깁슨 감독•주연의 '브레이브하트(1995)'를 제작하여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감독상•촬영상 등 5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잭 팔란스(Jack Palance, 1919~2006)는 우크라이나계 미국 배우로 악역의 대명사였다. 특히 1982~1986년 ABC방송의 주간 시리즈 '믿거나 말거나' 프로그램의 해설자로 더 많이 알려졌다. 또한 '바그다드 카페(1987)'에서 화가 루디 콕스 역으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에서 마이클 키튼에 대항하는 갱단 두목 칼 그리섬 역으로도 나왔다. 


 그는 '서든 피어(1952)'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다음해 '셰인'에서 다시 후보에 올라 2년 연속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진작 수상은 그의 나이 72세 때인 1991년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City Slickers)'에서 였다.

 

 

 

 


 "셰인, 돌아와요!"를 마지막에 외치던 꼬마 조이 역의 브랜든 드와일드(Brandon deWilde, 1942~1972)는 이후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주로 TV에 조연 출연하다가 1972년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만 30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조이의 어머니로, 조 스타렛의 아내로 셰인과의 드러나지 않는 연정을 품었던 마리언 역의 진 아서(Jean Arthur, 1900~1991)는 무성•유성 영화 시대를 거치면서 샤를르 브와예와 공연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1937)',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연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그리고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두 작품, 즉 캐리 그랜트, 로널드 콜맨과 공연한 '사랑의 별장(The Talk of the Town•1942)'과 '한 여자와 두 남자(The More the Merrier•1943)' 등에 출연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셰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나이 50살이 넘었을 때다. 이 작품이 그녀의 총천연색 영화 첫 번째 출연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이 만 90세로 캘리포니아 카멜 시티에서 사망했다.


 밴 헤플린(Van Heflin, 1908~1971)은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예일 대학에서 연극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인텔리 배우였다. 글렌 포드와 공연한 델머 데이비스 감독의 '유마 행 3시10분 열차(1957)', 고든 다글라스 감독의 앤 마그렛, 레드 버튼스와 공연한 '역마차(Stagecoach•1966)' 등에 출연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은 버트 랭카스터, 딘 마틴 등 호화캐스팅의 '에어포트(1970)'였다. 


 특히 그의 여동생 프랜시스 헤플린(1920~1994)은,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주연의 '나이아가라(1953)'와 '타이타닉(1953)'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작곡가 솔 카플란(1919~1990)과 결혼했는데, 그 아들이 조디 포스터 주연의 '피고인(The Accused•1988)'을 감독했던 조나던 카플란(72)이다. 그러니까 밴 헤플린은 조나던의 외삼촌이 되는 셈이다.


 끝으로 음악감독 빅터 영(Victor Young, 1900~1956)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삼손과 데릴라(1951)'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으며, '80일 간의 세계일주(1957)'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한 시카고 출신 작곡가이다. '셰인'의 주제곡 '황야가 부르는 소리'(youtube.com/watch?v=3kA6lCVwKnU)는 '하이 눈'의 주제가와 함께 우리의 추억 속에 울림으로 남아있는 명곡이다. 


 셰인의 모자는 흰색이었고, 잭 윌슨의 모자는 검정색이었다. 이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들이 남긴 '셰인'은 마리언의 매혹적인 은백색 웨딩드레스처럼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빛나고 있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6월22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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